노무현의 남자·신정아 게이트…尹은 왜 수사한 그를 불렀나 [김인엽의 대통령실 사람들]

입력 2022-07-16 10:00   수정 2023-05-01 05:56

<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 기자: 먼저, 어차피 지금 제일 관심이 되는 것이 변양균 실장 관련 문제인 것 같은데, 어제 발표를 듣고 굉장히 놀랐고 대통령께서도 충격을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저는 이것과 관련해서 세 가지 정도를 여쭤보려고 하는데 첫 번째는 기존에 대통령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서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는 표현도 쓰셨고 소설이라고도 하셨는데 발표 내용하고 많이 달랐던 것 같다 …

노무현 대통령 : 변양균 실장의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지금 참 난감하게 됐다. 제 입장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참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야 되겠다. 제가 매우 황당한 것은 믿음, 믿음을, 말하자면 믿음을 무겁게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그 믿음이 무너졌을 때, 뭐 그것이 얼마나 난감할 일일지는 여러분들이 짐작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개 지금 현재로서는 그렇고 …

2007년 9월 11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자들과 나눈 질의응답의 한 대목입니다. 기자회견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정아 게이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다음 날 진행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앞서 변 전 실장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자 "깜도 안된다"라고 일축했습니다. 하지만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자 크게 당혹스러워했습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를 네 번 연거푸 꺼낸 노 전 대통령의 답변에는 그가 얼마나 변 전 실장을 신뢰했는지가 묻어납니다. 참여정부 후반기는 변 전 실장과 문재인 전 대통령(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투톱 체제'로 평가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습니다. 참여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을 설계해 '노무현의 남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정책실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에는 발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변 전 실장이 15년 만에 대통령의 경제고문으로 복귀했습니다. 그것도 당시 '신정아 게이트'를 수사한 윤석열 대통령의 참모로 말입니다. 윤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 변 전 실장을 다시 기용하게 된 것일까요.
'비전 2030'의 설계자盧 신임받아 고속승진
1949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한 변 전 실장은 부산고등학교를 졸업,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를 취득했습니다. 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기획예산처 재정기획국 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변 전 실장은 2003년 기획예산처 차관, 2005년 기획예산처 장관, 2006년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영전하며 참여정부의 실세로 떠오릅니다. 변 전 실장은 2000년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치권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이던 이해찬 전 대표를 보좌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노 전 대통령도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변 전 실장을 "우리나라에 이런 공무원도 있구나"라며 높게 평가했습니다.



변 전 실장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재임하며 △정부 부처 조직개편 △공기업 경영혁신 △정부 성과 관리 등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제안했다고 합니다. 2005년 1월 정부 부처 중 최초로 '삼성을 배우다'라는 주제로 간부 혁신연찬회를 열어 기업의 경영혁신 노하우를 흡수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정책실장 재임 시기에는 노무현 정부의 복지·미래 청사진인 '비전 2030'을 설계하기도 했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와 부동산 정책에도 깊게 관여했습니다.
'신정아 게이트'로 몰락…당시 수사 검사가 尹 대통령
이처럼 노무현 정부에서 중책을 맡고 있던 변 전 실장을 한순간에 주저앉힌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그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 '신정아 게이트'입니다.

신정아씨는 2000년대 미술계에서 떠오르던 인물로, 금호미술관, 성호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했고 동국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됐습니다. 2007년 광주비엔날레 공동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학력 위조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신 씨가 주장하는 캔자스대학교 학·석사, 예일대 박사 학위가 모두 위조됐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신 씨의 학위는 모두 허위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안나》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신 씨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 그와 '연인 관계'였던 변 전 실장의 조력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둘은 미술에 조예가 깊은 변 전 실장이 미술관에 드나들면서 알게 됐고, 23살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연인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신 씨는 훗날 자서전을 통해 변 전 실장을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변 전 실장이 신 씨가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선임되는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라며 수사에 착수합니다. 2007년 10월 당시 서울 서부지검 구본민 차장검사는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고위 공직자인 변 씨가 신 씨를 출세시키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다양한 지위를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수사팀에서 근무하고 있던 검사 중 한명이 바로 윤 대통령입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이던 윤 대통령은 신 씨와 직접 대면해 수사하기도 했습니다. 신 씨는 이후 자전적 에세이《4001》을 통해 당시의 윤 대통령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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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변 전 실장에게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징역 4년을, 신 씨에게는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징역 4년을 구형했습니다. 재판부는 변 전 실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신 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변 전 실장은 이후 2012년 1월 책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를 펴냅니다. 본문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을 다루고 있지만, 서문과 마무리글에는 '참회'가 담겼습니다. 변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사표를 내러 갈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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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유일한 시련이었으며 가장 큰 고비였다. 나의 불찰이고 뼈아픈 잘못이었지만, 그 결과가 그리 참혹할 줄 몰랐다는 것이 더 큰 불찰이고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대통령과 국정 운영에 누를 끼쳤고 참회조차 못한 채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게 됐다
'슘페터식 혁신' 강조한 책 읽고 기용 결정한 것으로
윤 대통령은 15일 변 전 실장을 대통령실로 불렀습니다. 경제 정책을 자문할 '경제고문'이 그 직책이었습니다. 전날 변 전 실장 위촉 사실이 알려졌고, 세간의 관심은 윤 대통령이 그를 기용한 이유에 주목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변 전 실장을 기용한 배경에 대해 "과거엔 총수요 측면에서 거시 경제 방향을 잡아왔는데, (변 전 실장은) 혁신·공급 측면에서 4차산업혁명 산업구조에 부합하는 철학을 아주 오래전부터 피력한 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뭐 많은 분이 추천하셨고요"라고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변 전 실장이 2017년 펴낸 책《경제철학의 전환》을 읽고 그를 기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변 전 실장은 저서를 통해 “케인스식 금융·재정 중심의 단기 정책에서 벗어나 슘페터식 공급 혁신 정책으로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슘페터식 혁신 정책으로 정리해고 같은 노동 유연성 제고, 수도권 토지 규제 해제, 대대적인 금융규제 완화, 이민의 대대적인 개방 등을 제시했습니다. 동시에 실업급여 확대 같은 노동자의 사회안전망 확대 정책, 비수도권 지원을 위한 특별기금 조성 등도 병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윤 대통령에게 그의 기용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한 총리는 지난달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규제혁신추진단’ 신설과 관련해 변 전 실장을 언급했습니다. 한 총리는 개선이 필요한 덩어리 규제와 관련한 질문에 “그런 개혁에 대해 2017년 책을 쓴 분도 있다. 정부에 계셨던”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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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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